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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모음

여자 스님, 남자 사람 그리고 중앙 도서관 이야기

제가 대학교 신입생 때 일입니다.


중간고사가 코 앞이라 새벽부터 중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착실했습니다...ㅎㅎ)


한참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아우라를 풍기는 누군가가

제 옆자리에 앉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반사적으로 눈을 돌려 확인해보니 저 또래로 보이는 '여자 스님(비구니 스님)'께서

책상 위에 개나리 봇짐 비슷한 가방을 풀고 계셨습니다.


스님이 왠 일이지...잠깐 생각하고 다시 스터디 용맹정진!


한 30분이 흘렀을까요?


옆자리에서 뽀시락, 뽀시락,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상이 칸막이 형태로 되어 있는지라 그녀가 도대체 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어 더욱 신경이 쓰었습니다.


'스님이라 세상 물정을 잘 몰라 도서관에서 민폐를

끼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뽀시락 거리는 소리를 음악 소리에 묻어버리려고

카세트 플레이어에 팔을 뻗으려는 순.간.


옆자리에서 명함 크기의 뭔가가 휙~ 날아왔습니다.


깜짝 놀라 확인을 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엄마손 파이'였습니다.



아마 그녀는 혼자 먹기 미안해서 그 것을 제게 준 거겠지요.

그것도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치듯 휙~ 던져서...


저는 한동안 엄마손 파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에서 킥킥 거리는 웃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이 지으며 그녀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20살이 넘는 얼굴에서도 저런 아이의 표정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당황하여 꾸뻑 고맙다는 고개 인사를 하고

다시 그 파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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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세속에 찌들어 간다고 느낄 때문마다

그때의 '여자 스님'과 '남자 사람' 그리고 '중앙 도서관'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가슴 좀 훈훈해진다고 할까요? : )


아직도 그분은 그때 그 미소를 간직하고 있지 궁금하네요.